
2026년 2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한 구금 시설 앞. 밤새 추위를 뚫고 텐트를 치고 있던 마일레디 멘도사와 산드라 로살레스는 경찰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37일간의 시위 끝에 17명의 정치범이 석방됐지만, 두 여성의 남편은 여전히 수감된 상태였다. 그들은 미국의 군사 공격 이후 베네수엘라 정부가 정치범을 석방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실제로는 일부만 풀어주는 선택적 석방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Two women risked everything after US raid to protest Venezuela's detentions of their husbands
베네수엘라 정부는 2026년 1월, 미국의 압박 속에 정치범 석방을 발표했지만, 인권 단체들은 400명이 넘는 정치범이 여전히 구금된 현실을 지적했다. 멘도사와 로살레스를 포함한 약 150명의 여성들이 감옥 문 앞에 텐트 도시를 만들며 시위를 벌였고, 체인으로 서로를 묶고, 기도하고, 소셜미디어에 호소하며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한 건 일부가 아닌 '모두의 석방'이었다.
Under pressure from the U.S. government, Venezuela announced in January that it would free political prisoners, giving hope to families of detained dissidents. About 150 protesters, mostly wives and mothers, set up outside the doors of jails and prisons suspected of holding political detainees.
2026년 1월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개시하면서 이 나라의 정치적 지형은 극도로 요동쳤다. 공식적으로는 '테러리즘 방지 작전'으로 포장됐지만, 현지에서는 이를 정권 약화를 위한 외세의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이 공격 이후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제적 비난과 미국의 제재 압박 속에서 정치범 석방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석방은 전면적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정부는 여론 진정용으로 일부 수감자를 풀어주며, 반대파와 인권 단체의 비판을 희석시키려 했다.
그 사이, 수많은 가족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이 구금된 채 끝없는 기다림 속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 건 여성들이었다. 마일레디 멘도사와 산드라 로살레스는 정치 운동 경험이 전무한 평범한 주부들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체포 후 그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멘도사는 카라카스 서부에서 남편 에릭 디아스와 두 자녀와 함께 살았고, 로살레스는 북중부 발렌시아에서 네 자녀와 남편 디오니스 킨테로와 함께 살아왔다. 둘 다 차베스 혁명을 지지하는 성향이었고, 여전히 집권당에 투표하는 '정부 지지층'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정치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이 사실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수사가 '이념보다는 실용적 제거'임을 보여준다. 정부는 반대파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위험할 수 있는 인물'이라 판단되는 기술자, 정보 요원, 군 관계자까지도 제거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디아스는 공공장소 폭파 음모 혐의를 받았고, 킨테로는 폭약 기술자라는 직업적 배경 때문에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체포 후 가족에게 연락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국제 인권법에도 명백히 위반되는 조치다.
멘도사와 로살레스는 처음엔 서로 몰랐다. 그러나 같은 운명을 가진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카라카스의 한 dead-end 거리에는 '정치범 석방 캠프'가 형성된다. 이곳은 곧 37일간의 지속 시위가 벌어진 상징적 공간이 됐다. 여성들은 텐트를 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기도회를 열고, 구호를 외쳤다. SNS에는 #FreeThemAll, #NoToPoliticalPrison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됐고, AP통신을 비롯한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체인으로 서로를 묶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는 '우리는 떨어질 수 없으며, 우리 중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는 상징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두꺼운 콘크리트 벽 너머 수감자들에게도 전달됐고, 갇힌 이들이 벽을 두드리는 소리로 답하기도 했다. 2026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아침, 17명의 수감자가 석방되며 감격의 상봉이 이어졌다. 그러나 멘도사와 로살레스는 웃지 못했다. 그들의 남편은 여전히 안에 있었다.
이날 석방된 이들은 대부분 낮은 직위의 관료나, 국제적으로 주목받던 인사들이었다. 반면, 기술자나 정보 요원 등 '실무 핵심 인력'은 여전히 수감 상태였다. 이는 정부가 '가시적 석방'으로 국제 여론은 달래되, 내부 통제는 유지하려는 계산을 보여준다. 인권 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선택적 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당시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정치범 석방을 인질로 삼아 외교적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내무부 장관 디오스다도 카벨로는 "테러 음모는 국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법원은 재판을 수개월째 미루며, 피고인들의 변호사 접근조차 제한했다. 이는 전형적인 '정치적 사법 절차 유예' 전략이다.
그럼에도 멘도사와 로살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명, 두 명이 아니라 모두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캠프를 해체하지 않고 계속 시위를 이어갔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유가족을 넘어, 정치적 연대의 상징이 됐다. 다른 가족들이 합류했고, 인권 활동가들이 법적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이 시위가 차베스-마두로 체제 이후의 시민 운동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로살레스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위험한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게 위험한 나라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폭약 관련 음모'로 기소됐지만, 정부 측은 여전히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멘도사는 "내 남편은 정권 반대도, 폭력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저 직장에서 성실히 일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가족 시위를 넘어, 베네수엘라 내부의 억압 구조와 국제 정치의 복잡한 연계를 보여준다. 미국의 군사 공격은 정부의 정치적 약화를 초래했지만, 동시에 정부는 이를 '외세 침략'으로 포장하며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정치범 석방은 이런 패턴의 일부였다. 석방은 자발적인 인권 존중이 아니라, 외부 압력에 대한 전략적 반응이었다.
현재까지도 400명 이상의 정치범이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2026년 3월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의 구금 시설에서 고문, 고립 수용, 의료 차단 등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멘도사와 로살레스의 투쟁은 이 구조 전체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제 이 여성들은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다. 그들은 미디어 인터뷰를 하고, 국제 인권 기구에 증언하고, 다른 가족들을 조직하는 리더가 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가정을 지키는 일이 곧 정치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억압받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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