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토 람(Tô Lâm)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원자력 에너지, 인프라, 공급망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층 심화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South Korean President Lee Jae-myung held summit talks with Vietnam's top leader on Tuesday to strengthen cooperation in nuclear energy, infrastructure and supply chains, as both countries seek to navigate rising global uncertainties.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에너지 보안과 핵심 광물 확보를 비롯해 국방, 인프라 등 핵심 산업 전반에 걸친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베트남 국빈 방문 기간 동안 양국의 전략적 협력 확대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Lee met with To Lam in Hanoi during a state visit, where the two sides discussed expanding strategic cooperation across key sectors, including energy security and critical minerals.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은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한국의 신남방정책 2.0을 실질적으로 구체화하는 분수령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기존의 경제 중심 협력을 넘어서 원전, 방산, 첨단기술 등 전략 산업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베트남은 앞으로 10년간 전력 수요가 2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라 원자력 발전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 중이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베트남 시장 진출을 추진해왔는데, 이번 회담은 그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베트남은 현재 원전 계획을 재가동 중이며, 한국형 원전(APR1400) 도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실제로 2023년부터 양국은 원전 협력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실무 협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양국은 또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 핵심 광물(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의 공동 조달과 가공 기술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희토류 매장량이 세계 3위 수준이며, 한국은 정제 기술과 소재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 시너지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글로벌 분업 체계가 지정학적 리스크로 재편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과제가 됐다"며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미 양국 간 무역 규모가 2025년 기준 946억 달러에 달하며, 상호 상위 3대 교역국에 진입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2030년까지 양자 무역액을 1500억 달러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인프라 프로젝트 협력이 핵심 동력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베트남 측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적극 제안한 프로젝트로, 약 1.1조 원(7.4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도시 개발 사업과 1027억 원(6.9억 달러)의 신공항 건설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특히 북부 하이퐁과 중부 다낭 지역에서의 신도시 개발은 삼성, LG, SK 등 한국 주요 기업의 생산 거점과 직결돼 있어 사업 성사 시 고부가가치 산업 생태계가 함께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방위산업 협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베트남은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응해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있으며, 한국의 첨단 무기 체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회담 계기로 한국형 해상초계기, 다목적함, 정밀유도무기 등에 대한 수출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산 방산 수출은 2025년 기준 170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베트남은 그 다음 타깃 시장으로 꼽히고 있다.
양국은 경제 협력을 넘어 과학기술, 인공지능 반도체, 기후 변화 대응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AI 반도체는 한국의 설계·제조 역량과 베트남의 저비용 생산 인프라가 결합할 수 있는 이상적인 분야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이미 18조 원 이상을 투자해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생산을 하고 있으며, 향후 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화산업과 관광 협력도 강화된다. 양국은 K팝, 드라마, 영화 등 한국 콘텐츠의 베트남 진출을 지원하고, 베트남 관광객 유치를 위해 비자 완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현재 연간 한국을 찾는 베트남 관광객은 약 400만 명 수준이며, 이는 외국인 관광객 중 중국 다음으로 많다. 반대로 한국인의 베트남 방문도 매년 100만 명을 넘고 있어 인적 교류 기반은 이미 탄탄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베트남 교민 간담회에서 "양국 관계는 이제 정부 간 협력을 넘어 국민 간 신뢰와 우정의 관계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양자 협력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아시아 권력 구조 변화 속에서 의미를 더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과 베트남은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전략적 동반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IPA)과 중국의 일대일로(BRI)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으며, 한국은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한 중립적 협력자로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베트남 국립상징인 호치민 묘소에 헌화한 것은 역사적 감정을 배려한 외교적 배려이자, 베트남과의 신뢰 구축을 위한 상징적 행보로 해석된다.
앞으로의 과제는 합의사항의 이행 속도다. 정상 간 합의가 실질적 사업으로 이어지려면 실무 부처와 기업 간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23일 예정된 한국 주요 재벌 총수들과의 비즈니스 포럼은 바로 그런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장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참석하는 이번 포럼은 양국 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한-베트남 관계가 단순한 생산 기지와 소비 시장의 관계를 넘어, 기술·안보·가치 기반의 전략적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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