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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용사들이 돌아온 날…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기억 🔥

시사

by techsnap 2026. 4. 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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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방사능 오염을 수습한 ‘액화자(liquidators)’들이 40주년을 앞두고 다시 그 땅을 밟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죽은 동료들을 기리는 묘비 앞에 꽃을 놓으며 침묵 속에서 과거를 추억했다.

Workers who helped clean up contamination from the 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disaster hold flowers before placing them on a monument to their fallen comrades near the plant in Chernobyl, Ukraine, Tuesday, April 21, 2026. (AP Photo/Evgeniy Maloletka)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방사능 측정 장비를 들고 점검하는 사람부터, 폐허가 된 프리피아트 도시를 걷는 예전 수습 작업원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과거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라는 적과 싸웠던 생존자들이다.

Workers who helped clean up contamination from the 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accident walk in the nearby abandoned town of Prypiat, Ukraine, during a return visit to the region, Tuesday, April 21, 2026. (AP Photo/Evgeniy Maloletka)

체르노빌 40년, 액화자들이 다시 걸어간 길

2026년 4월 21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40년 전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 재난이 일어났던 그 현장에 60대 중반의 한 무리의 남자들이 조용히 모였다. 대부분 흰머리가 성성하고, 얼굴에는 세월과 고통이 각인된 이들은 바로 ‘액화자(liquidators)’다. 이들은 소련 정부가 ‘문제를 제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을 가진,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방사능 오염을 수습하기 위해 동원된 60만 명의 작업원들이다. 군인, 소방관, 기술자, 광부, 의사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다는 점이다.

이날의 방문은 40주년을 앞두고 열린 공식 추모 행사의 일환으로, 체르노빌 원전과 인근 폐허 도시인 프리피아트(Prypiat)를 다시 걷는 일정이 포함됐다. 사진 속에서 이들은 검은 정장 차림에 흰 리본을 단 꽃다발을 들고, 동료들을 기리는 기념비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이는 눈물로 침묵했고, 어떤 이는 단단한 눈빛으로 과거를 응시했다. 이들이 서 있는 그 땅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높은 곳이다. 이들을 태운 버스는 출입 시 방사선 검사를 통과해야 했고, 한 남성이 손에 든 방사선 측정기의 경보음이 무심코 귀를 찔렀다.

액화자, 이름 뒤에 가려진 희생

‘액화자’라는 단어는 소련식 냉소적 라벨링이다. ‘문제를 액화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 표현은, 마치 방사능 오염을 물처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적 과업처럼 들리지만,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당시 작업자들은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보호 장비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헬리콥터는 노출된 원자로 위로 모래와 붕소, 납을 떨어뜨려 불을 끄려 했고, 지상에서는 수천 명의 작업자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잔해를 수동으로 치웠다. 일부는 하루 만에 치명적인 피폭을 당했고, 수많은 이들이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62세의 볼로디미르 베치르코(Volodymyr Vechirko)는 체르노빌 사고 직후 지역 제염 작업에 투입된 인부다. 그는 버스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보드카를 마시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는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다. 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의식적 음주’는 위험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의식이자, 전우애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가 입은 옷에는 1986년을 상징하는 배지가 붙어 있었고, 그의 눈빛에는 자부심과 슬픔이 동시에 스며 있었다.

66세의 안나톨리 프릴립코(Anatolii Prylipko)는 당시 소방차를 몰고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이다. 그는 “우리는 불이 났다고만 들었지, 원자로가 터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헬멧과 장갑만으로 방사능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한 적 있다. 이날 그는 원전 앞에서 침묵하며 사진에 포착됐고, 그의 얼굴에는 40년 전의 고통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프리피아트, 시간이 멈춘 도시의 의미

액화자들이 걸어간 또 다른 장소는 프리피아트. 원전에서 불과 3km 떨어진 이 계획 도시는 사고 발생 36시간 만에 전면 대피령이 내려지며 하루아침에 ‘죽은 도시’가 됐다. 지금도 거리는 풀로 덮였고, 놀이공원의 범퍼카는 녹슬어 가만히 멈춰 있다. 벽에는 사슴을 그린 벽화가 흐릿하게 남아 있고, 학교 책상 위에는 1986년 교과서가 그대로 놓여 있다.

이 도시는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이곳은 액화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상징적 공간이다. 그들은 이 도시가 다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염 작업을 했다. 방사능을 ‘없애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유럽 대륙 전체의 방사능 확산을 막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날 프리피아트를 걷던 65세의 스타니슬라프 툴루니이(Stanislav Tolumnyi)는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소방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땐 여기가 지옥 같았다. 지금은 오히려 조용해서 평화롭다”고 말했다. 이 평화는 아이러니하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 자연이 돌아왔고, 늑대와 사슴이 거리를 배회한다. 하지만 이 평화는 인간의 실수에 대한 대가다.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

체르노빌 사고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체르노빌 지역은 다시 전면전의 현장이 됐고, 원전 시설의 안전이 위협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인질로 잡히고, 전력 공급이 끊기며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됐다. 이 사건은 핵 에너지의 위험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액화자들은 이제 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대에 이르렀다. 그들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많은 이들이 후유증으로 죽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지만, 보상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다. 이날 행사에서 꽃을 놓은 기념비에는 ‘영원한 기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공식적인 기념일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 사진 에세이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생존자들이 남긴 마지막 증언이다. 그들이 걸었던 길은 방사능이 아니라, 인류의 오만과 무지가 낳은 참사의 흔적이다. 우리가 이 사진들을 보는 이유는 과거를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서다. 체르노빌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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